김동건 교수 칼럼

[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11. 역사와 종말 : 시간과 영원] ③ 부활신앙
2013-12-15 06:34:17
전명근
조회수   201
[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11. 역사와 종말 : 시간과 영원] ③ 부활신앙

2013.12.13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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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은 기독교의 생명력

기독교 신앙은
부활신앙이다. 부활이 기독교를 다른 모든 종교와 구별하게 한다. 우리를 기독교인으로 만들고 근원적으로 새롭게 만든 것은 부활신앙이다. 기독교의
생명력은 부활신앙에서 결정된다.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얼마나 역동적이며 활기가 있었는지도 부활신앙의 선명성에 달려 있었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이
흐려진 것은 부활신앙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오늘은 부활과 연관된 몇 가지 신학적 주제들을 보겠다.

부활의
역사성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일까. 일반 신자에게는 당황스러운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학문적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논란이 많다. 부활의 역사성에 대한 부정적인 논의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성경의 부활 기사를 역사적 사실로 보지
않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을 석의적 분석으로 반박하기 위해서는 많은 지면이 필요하므로 여기서는 제자들의 회심과 초기교회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만
보자.

역사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이것이 역사학의 기본이 되는 일반적 원칙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제자들은 모두
달아났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담대히 선포하기 시작했다(행2:36). 이러한 선포는 단순한 증언이 아니라
목숨을 건 선포였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그리스도를 선포하던 제자들의 순교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제자들의 회심과 순교를 통해 초대교회가
형성되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역사적 차원에서 볼 때 제자들의 회심과 교회의 태동에는 원인이 있어야 한다.
제자들에게 어떤 놀라운 ‘충격(impact)’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성경은 이 충격이 바로 ‘예수의 부활’이라고 일관되게 증언한다.
복음서가 ‘신앙의 언어’로 기록되었다 하더라도 복음서의 증언에 ‘역사적 사실’이 들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부활에 대한 ‘해석’에 치중하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부활의 사실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거나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부활이 주는 ‘의미’만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부활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회복한 사건이라거나, 종말론적인 의미를 부활로 표현했다거나, 십자가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냈다는 등의 주장이다. 신학계에서 흔히 보는 주장이다.

필자는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부활은 반드시
‘사실(fact)’이어야 한다. 사실을 모호하게 두고 의미에 치중할 수는 없다. 예수님의 어떤 가르침은 사실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예를 들면
‘돌아온 탕자’ 이야기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더라도 문제는 없다. 우리에게 의미만 전달해줘도 된다.

하지만 예수님 부활은 반드시
역사적이어야 한다. 만약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 어떤 해석을 하더라도 그 결과는 허탄한 것이 된다.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 자체가 상실된다.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고 의미일 뿐이라면 장차 다가올 우리의 부활도 사실이 아닐 것이다. 결국 부활을 믿는 기독교인이 가장 불쌍한
자들이다(고전15:13∼19). 예수님 부활은 확고한 역사적 사실 위에 구속사적인 의미가 더해진다. 부활의 경우 사실(fact) 없는
의미(meaning)는 없다!

그리스도는 살아 있다

부활신앙은 ‘과거’에 일어난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 앞에서 완전히 좌절하고 달아난 제자들이 그렇게 담대하게 예수님을 선포한 것은 살아있는 예수님을 ‘현재적’으로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여 현재 살아 있다는 체험을 했다. 현재 살아서 역사하고, 지배하는 그리스도를 만났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 앞에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적을 행했다. 그의 놀라운 외침을 들어보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3:6)

예수님의 이름은 부적이 아니다. 죽은 예수님의 이름이 기적을 일으킬 수 없다. 예수님의 이름은 그의 현존이며
그의 현재적 능력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현재 살아 있다는 말이다. 부활신앙은 예수님이 ‘지금’ 생생히 살아서 나의 삶
속에 있고, 우리가 숨 쉬는 사회 안에 있고, 고통 받고 소외된 자들 옆에 있다는 고백이다. 그 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내가 만날 때 부활신앙은
생기를 얻는다.

신앙은 ‘죽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살아서 역사하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건이다. 부활의
현재적 힘을 체험하지 못한 신앙은 공허한 의무감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매년 드리는 부활절 예배가 관례 행사가 되고 말았다. 현대의 교회가
부활신앙을 잃어버리고, 죽은 예수님을 기억하고 회상하는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예수님의 유품을 모아둔 기념관이
아니다.

현재와 미래

부활의 힘은 현재하지만 미래에 일어날 우리의 부활에서 완성된다. 신자는 현재하는
부활의 힘을 체험하면서 다가올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진다. 부활의 현재와 미래는 분리되지 않으며, 언제나 하나의 본질을 가진다. 부활의 현재성과
미래적 소망을 조화 있게 유지하는 것이 부활신앙의 관건이다.

부활을 먼 미래로만 생각하면 부활은 하나의 교리가 될 수밖에 없고
공허해진다. 부활신앙에 들어간 자는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다. 성경은 살아 있는 부활신앙에 대해 넘치도록 증언하고 있다. 바울은 부활한 그리스도를
체험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됐다.

하지만 부활의 현재적 체험이 장차 완성될 미래의 소망을 무시하지 않는다. 현재하는 부활의
힘은 장차 이루어질 부활의 세계에서 완성된다. 다가올 부활의 소망은 현재를 등한시하지 않는다. 부활의 소망은 현재를 변화시키는 힘이다. 동시에
부활은 현재의 고난을 이기고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근원적 희망의 근거다.

21세기, 위기의 시대에 부활신앙으로 거듭나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부활신앙이 한국교회를 선명하고 새롭게 하기를 소망한다.


김동건 교수 <영남신대 조직신학, 저자연락은 페이스북
facebook.com/dkkim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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